다다이즘 ; 예술 혹은 광기
다다이즘 ; 예술 혹은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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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하우스만, 예술 비평가, 포토몽타주> |
다다이즘(Dadaism)의 개요
다다이즘(Dadaism, 1916∼1924)은 20세기 초반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중 전쟁의 혼란과 불안에서 촉발된 예술운동이다. 이는 스위스를 비롯하여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전역과 미국으로까지 확산되어 갔다. 다다이스트들은 전통의 모든 예술형식과 가치 체계를 부정하고 반도덕, 반이성, 반예술을 표방하였고, 반항적이고 비합리의 허무주의의 성격을 띈 예술 운동을 펼쳤다.
다다(dada)의 어원
다다의 형성 배경
19세기 초는 과학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이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에게 전적으로 기대기보다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추구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본성과 감성은 배제되었고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무시된 것이다.
이는 사회 구조의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고, 산업 발달과 기술의 혁신에 의한 대량생산 방식이 도입되면서,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러한 도시화의 집중은 집단이기에 억눌린 개인은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세상은 물질 주의와 인간의 탐욕에 의해 물질적 팽창과 더 강력한 전쟁 무기 및 대량 살생 무기를 개발하면서 유럽은 전쟁의 도가니가 되어갔다. 급기야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전쟁의 잔혹성과 공포감이 확산되면서 시민들은 내면 깊이 냉소와 허무가 커져 갔다.
젊은이들은 전쟁을 피해 중립국인 스위스 취리히에 모여들었고, 전쟁에 대한 환멸과 공포에 질린 젊은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반정부, 반이성, 반도덕, 반예술을 표방하며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 이는 시각 미술뿐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 그리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하였다.
루마니아에서 출생하고 프랑스의 시인이자 문학, 예술가인 트리스탄 차라(Tristan Tzara)가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다다》 선언을 발표하면서 다다이즘이 정식 출범하였다. 다다이스트들은 지역미다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에 대응하며 반예술적 표현을 통해 기존의 예술적 관념과 가치에 도전하였다.
다다의 반예술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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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르프, 우연의 법칙에 따라 배열된 사각형, 종이에 꼴라쥬> |
다다이스트들은 기존의 모든 가치와 규범을 낡은 것으로 간주하고 기성 문화와 정통성을 거부하였다. 이를 토대로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 본성에 대한 가치를 제고하며, 무의미하고 비합리적인 예술 표현을 통해 저항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의 광기와 대량 학살이 보여 주는 인간 사회의 부조리 앞에, 당시 과학기술의 발전과 합리적 이성에 걸었던 기대에 대한 좌절과 인간의 무력함을 직면한 허무의 표출이기도 하다. 이들은 무질서, 비합리성, 우연성을 중시하며 의도적으로 반전통적이고 파괴적인 예술을 펼쳤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과 개성을 회복하고, 변질되고 상업화 되어가는 미술을 되살리고자 하는 고유한 정신의 자유를 향한 몸부림의 한 형태이다.
이는 특정 예술가의 타고난 미적 감각과 권위적인 전통 방법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며, 예술을 삶 안으로 들여놓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삼았다. 또한, 부르주아의 경제 논리에 귀속된 미술의 퇴행에 대한 혐오의 표현이기도 하다.
다다의 정신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다다의 정신은 단지 예술의 어떤 형식이나 표현에 대한 단순한 반항에만 국한하지 않고, 예술과 삶, 인간 정신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심오한 철학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인간의 내적 감성을 중시하여 기계문명과 물질주의에 의해 소외된 인간성의 회복에 근간하고 있다.![]() |
<마르셀 뒤샹, 샘, 기성품 소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