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25의 게시물 표시

불행의 아이콘, 프리다 칼로: 고통 속에서 꽃 피운 예술 세계

이미지
  불행의 아이콘, 프리다 칼로: 고통 속에서 꽃 피운 예술 세계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수 많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신체적 고통과 감정을 솔직하게 화폭에 담아낸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입니다. 그녀는 강렬한 자화상과 멕시코 민속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나타낸 독특한 화풍으로 유명하며, 오늘날에는 여성주의와 자아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1. 프리다 칼로의 생애: 고통 속에서 꽃핀 예술  1.1 유년기와 사고  프리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가늘어지는 장애를 겪었지만,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에 힘입어 밝고 영리한 유년을 보냈습니다. 일찍 상급 학교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기로 꿈꾸었지만, 그녀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1925년의 대형 교통사고였습니다.  그녀가 18세 되던 해에 버스와 전차의 충돌 사고로 척추와 골반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이후 평생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학급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이동 중 트램과의 충돌로 부러진 쇠막대가 그녀의 골반과 허리 부위를 관통하는 비극이 벌어진 거예요.  그로 인해 무려 서른다섯 번이 넘는 고통스러운 수술과 긴 병상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되고자 하는 꿈은 접어야 했고, 가족들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보며 자화상을 그리면서 예술적 재능을 키워나갔습니다.  1.2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  <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 1931> 1929년, 프리다는 멕시코 벽화의 대가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를 만나게 됩니다.  공공미술을 이끌어가고 민족 정체성과 사상에 대한 그의 사상과 신념에 매료되어 스물 한 살이라는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하게 됩니다. 디에고는 그녀의 당찬 성격과 예술적 재능을 높이 샀지만, 두 사람...

현대미술의 서막을 여는 인상 주의

이미지
  현대미술의 서막을 여는 인상 주의 19세기 후반 인상주의의 등장은 서양 미술사에서 예술의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 커다란 이슈 중 하나를 의미합니다. 이는 과거의 전통적이고 아카데믹한 회화의 경직된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에 뿌리를 둔 아방가르드 운동의 하나입니다.   <끌로드모네, 르 그랜드캐슬, 1908> 인상주의 화가들은 주로 자연을 소재로 빛, 색채,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하여 즉각적 인식에 중점을 둔 예술적 표현을 중요시 했습니다. 전통적인 기법으로는 수용할 수 없는 현대적 일상의  순간을 원초적인 진정성으로 포착하고자 했습니다.  인상주의의 전개  인상주의의 탄생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1. 전통으로부터의 탈피   인상주의 이전에는 미술계가 역사적, 종교적, 신화적 주제를 주로 다루면서 신을 향한 염원을 세심한 디테일로 표현했습니다. 당시 미술은 고전주의적 양식에 따르는 제도적이고 국가주도의 정통미술의 계보를 이어가는 신고전주의 미술가들이 주도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소묘 기법에 대한 강박, 정치적이거나 제한된 주제에 매몰되어 갔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 1793> 이에 반발하는 쿠르베 등 젊은 화가들이 등장하면서 미술의 학문적 전통에 대한 도전과 제도적 이상에 대한 거부의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로써 당시 화랑은 제도권과 비제도권 미술로 구분되어 대립이 이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2. 기술발전의 영향 19세기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폭발적인 시기였습니다. 무엇보다 사진기의 발명은 당시 화가들의 위상에 마치 시한폭탄 같은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하는 커다란 위협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귀족이나 상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돈벌이를 할 이유가 없게 되었고, 새로운 대안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3. 인상주의에 영향을 준 대표적 선구자 3.1 귀스타브 쿠르베 ( J...

아방가르드 예술 : 혼돈, 반란 그리고 아름다움

이미지
 아방가르드 예술 : 혼돈, 반란 그리고 아름다움 아방가르드의 개요 19세기 말부터 유럽은 극적인 변화의 시대를 맞았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사회적, 정치적 격변을 가져왔고, 이는 예술과 문학에 혁명적 변화를 초래하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기 초 유럽 전방위에서 기성 미술에의 저항과 새로운 미술로의 혁신을 이끌어 낸 아방가르드 운동이 전개하게 되었다. 미술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가장 활발한 혁신의 꽃을 피우고 다양한 실험적 도전의 획기적 미술사조를 낳았다. 아방가르드 ( avant-garde) 어원 아방가르드 또는 전위 예술 (前衛藝術)은 가장 앞장서서 변화를 추구해 나간다는 의미로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급진적 예술사조를 가리킨다.  아방가르드( avant-garde)는 프랑스어로 군대에서 사용하던 용어이다. 근대 이전 재래식 회전 전투에서 가장 앞에 서는 부대를 가리키는 전위부대를 말한다. 이후에는 정치나 사회혁명의 급진파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아방가르드의 전개 1)인상주의의 영향 19세기 후반 모네와 마네 등에 의해 인상주의 미술이 등장했다. 인상주의 미술은 아카데믹 회화의 양식인 환영적 재현에서 벗어나, 그림의 주체와 기교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하고 변화무쌍한 자연의 순간적인 인상을 화폭에 담아내며 미술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끌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2> 그것은 빛과 색채를 통해 순간의 모습을 포착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처음 인상주의 그림을 접한 관객들은 형태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 것에 악평 일색이었던 만큼 획기적인 실험의 도전이었다. 그 영향으로 인상주의 이후 예술은 다양한 실험과 양식이 출현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2) 후기인상주의 <폴 고갱, 언제 결혼하니? , 1892> 예술가들 사이 빛과 색채의 무질서한 화풍의 한계를 넘어 질서와 구성, 형태를 추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였다. 단순성과 형태의 미 사이 입체감의 ...

다다이즘 ; 예술 혹은 광기

이미지
 다다이즘 ; 예술 혹은 광기 <라울 하우스만, 예술 비평가, 포토몽타주> 다다이즘(Dadaism)의 개요   다다이즘(Dadaism, 1916∼1924)은 20세기 초반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중 전쟁의 혼란과 불안에서 촉발된 예술운동이다. 이는 스위스를 비롯하여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전역과 미국으로까지 확산되어 갔다. 다다이스트들은 전통의 모든 예술형식과 가치 체계를 부정하고 반도덕, 반이성, 반예술을 표방하였고, 반항적이고 비합리의 허무주의의 성격을 띈 예술 운동을 펼쳤다.  다다(dada)의 어원 다다(dada)라는 어원의 유래는 여러가지가 있다. 독일어로 '취미' 라는 뜻이 있고, 휴고발(Hugo Ball)이 칼로 독일어로 된 사전을 무작위로 찔러 선택된 명칭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프랑스어로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목마를 가리키는 말 또는 아기들의 옹알이인 '빠빠'  '까까'처럼 아무 의미 없는 말을 선택한 것이라는 설 등이 있다. 이는 모두 유아적이고 유치한 단어처럼 고고한 예술의 지위를 조롱하듯 '무의미 함'을 가리키고 있다. 다다의 형성 배경   19세기 초는 과학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이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에게 전적으로 기대기보다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추구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본성과 감성은 배제되었고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무시된 것이다.    이는 사회 구조의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고, 산업 발달과 기술의 혁신에 의한 대량생산 방식이 도입되면서,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러한 도시화의 집중은 집단이기에 억눌린 개인은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세상은 물질 주의와 인간의 탐욕에 의해 물질적 팽창과 더 강력한 전쟁 무기 및 대량 살생 무기를 개발하면서 유럽은 전쟁의 도가니가 되어갔다. 급기야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전쟁의 잔혹성과 공포감이 확산되면서 시민들은 내면 깊이 냉소와 허무가 커져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