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 해방과 자유로운 붓질, 야수주의 앙리 마티스
그림을 그리거나 감상할 때 흔히 우리가 보고 인식하고 있는 대로 표현하거나 해석하려고 합니다. 익숙한 형식을 벗어난 그림을 보면 어떤 것이 느껴지나요? "나무가 왜 빨간색이지?", "하늘이 왜 노란색이야?" 사실적인 그림에 익숙한 우리 눈에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는 색감이죠. 그런데 이런 '엉뚱한' 색채를 세상에 당당하게 내놓은 화가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야수주의(Fauvism) 화가들이고, 그 한가운데 앙리 마티스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 짧지만 강렬했던 미술 사조와, 평생 색채를 사랑했던 한 화가의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야수주의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20세기 초, 화가들은 조금 다른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것"은 더 이상 그림만의 특권이 아니게 된 거예요. 사진기의 출현은 그 시대 화가들에게 매우 놀라운 이슈로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거예요. 더 이상 대중의 필요에서 밀려나 존재감 자체에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화가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림을 꼭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할까?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담을 수는 없을까?" 이런 흐름 속에서 1905년, 파리의 살롱 도톤느( Salon Dotonne) 에 마티스와 그의 동료들이 작품을 선보입니다. 강렬한 원색이 가득한 그림들을 본 한 비평가는 "마치 야수들의 우리에 갇힌 것 같다"는 말로 혹평을 남기는데요, 이 한마디가 그대로 사조의 이름이 되어버립니다. 야수주의(Fauvism), '야수들'이라는 뜻이죠. 분명한 붓질과 색채의 왜곡이 원시적이라고 하여 원시주의 화풍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야수주의가 오래 지속된 흐름이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대략 1904년부터 1908년, 채 5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반짝였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이...